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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
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
사는게 팍팍한 날에는 저녁에도 산에 오르고 싶다. 동네 뒷산에 올라 어두워 오는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 본다. 어둠이 거리를 점령하자, 가로등 불빛이 켜지고, 전조등을 켠 자동차들이 떼지어 어디론가 달려가고 또 온다. 검은 콘크리트 빌딩들도 하나 둘 눈을 뜨고 납짝 납짝한 단독주택과 성냥곽 쌓아놓은것같은 아파트 빌딩도 층층이 불을 밝힌다. 누구네 집은 사람이 있고 누구네 집은 사람이 없는것이 잘도 보인다.
빌딩숲 사이로 우뚝우뚝 솟은 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들도 불을 켠다. 마음 아픈사람 여기모여라! 빨간 십자가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몸 아픈사람 여기 모여라! 파란 십자가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는 거리의 상징이 되었고 렌드마크가 되었다. 인본 사상과 생명중시의 사상을 바탕으로 민중들의 틈에서 그들의 생명과 안녕을 바라며 태어난 종교단체와 병원들의 숭고한 정신은 민중들이 우러르고 존경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는 모르겠으나 이 단체들에게도 경영철학이 생기고 이윤창출과 부의 축적으로 이어지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도시의 중요한 자리마다 거대한 공룡처럼, 이들 단체의 빌딩이 서있다. 서민 아파트의 불빛이 초라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네온싸인 불빛의 거리와 빨간 십자가와 파란십자가의 불빛들이 점령한 도시에서 성냥곽같은 콘크리트 빌딩의 층층마다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흐릿한 불빛 밑에서 살아간다. 사람밑에 사람 살고 사람위에 사람사는 세상, 사람위에 사람죽고 사람밑에 사람 태어나는 도시의 빌딩은, 오늘도 한쪽에서는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한쪽에서는 웃음과 행복함이 넘친다. 이 미친 도시의 빌딩들은 모래로 쌓아 놓은 허구의 세상이다. 언제인가는 무너지고야 말 운명을 갖고 태어난 빌딩 숲들은 점점 도시를 메워 나가고 있다. 바람길을 막고, 햇볕을 막으며, 물길을 덮고 서있는 빌딩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인가는 이 허구의 땅을 내려가리라! 이 어질머리 나는 세상에서 벗어 나리라 믿으며, 오늘의 고달픔을 달래려고 하나 둘 불을 끈다. 유독 크고 높은 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만이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십자가들이 늘어나고 커갈수록 도시민들의 삶은 더 피폐화 되고, 아픈 사람들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많은 성직자들과 의사들이 이 사회에 봉사하고 희생하는것도 사실이다. 또한 그들의 희생이 있기에 이만큼이라도 도시가 정화되고 안전해진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가 집단화 , 도시화 되어가는 와중에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것은 모순이다.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사람들까지 우리가 끌어 안고 보듬어 줄 필요가 있는데, 부의 축적으로 기업화된 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들의 운영자들이 해야할 일일것이다. 만일에 수 많은 사람들의 헌금을 개인의 영욕과 사리 사욕에 쓰인다면 그것은 사기에 해당되는것이며, 병원을 운영하면서 축적한 재물이 개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질하는 패악을 저지르는 일일것이다. 최초에 하나님에게 맹세 했듯이, 히포크라테스에게 선서 했듯이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픈 사람들을 돈으로만 보지말고, 머리로 감싸주고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빨간 십자가와 파란 십자가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지금도 이 슬픈 도시의 어디쯤에서는 청아한 교회 종소리, 심금을 파고드는 사찰의 종소리와 다급하게 울어대는 엠블런스 소리가 도시의 거리에 울려퍼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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