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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 2002년 북한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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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방
 
작성자 박세흥
작성일 2011/12/25
ㆍ조회: 3445  
김병관 2002년 북한방문기
 
김정일의 사망에 즈음하여 9년전 북한을 방문한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합니다. 한때나마 동경했던 사회주의 국가 북한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부슬비가 내리는 순안공항을 이륙하면서 너무나 마음이 착잡하였습니다. 마지막 여장을 푼 심양의 호텔에서 민족의 앞날이 염려되어 뜬 눈으로 이 북한 방문기를 작성하였습니다. 제가 생업을 팽개치고 애국전선에 투신하게 된 하나의 동기로도 작용되었습니다. 좀 길지만 꼭 한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김병관의 북한 방문기. (2002. 10.24 ) 수필문학가/토요저널 발행인
 
■ 생존을 위한 생존법의 우화(禹話).
인간은 누구나 꿈꿀 권리가 있다. 야망을 품을 수 있는 자유도 있다. 국가나 동족, 이웃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가히 우주적인 이 혼돈에 맞서 고집스러운 반항아가 된들 죄가 될리 없다.
그러나 인간이 쓰는 역사는 모범답안이 없는 모양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생존을 위한 생존법의 우화가 있을 뿐 구원의 진리는 확연해 보이지 않는다. 사회주의 이념의 마지막 청지기를 자처하는 피델카스트로의 집념과 강경노선 역시 한 개인적인 야망일 뿐 진정한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속수무책 패색이 짙어가는 차제에 때마침 북한 땅 주체사상의 현주소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출발 전 날밤 긴장도 되고 마음이 들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10월19일 출발한 방북은 반세기의 단절이후 최초로 민간차원에서 관광단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방북이라 극히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북측의 핵문제가 불거진 시점이어서 과연 우리 일행이 평양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도 미심쩍을 만큼 한반도의 기류가 어수선한 때였다.
그러나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의 숙원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지상과제임이 분명하기에 결국 뜨거운 동포애의 작용만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으로 서서히 이동시킬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한때, 막시즘(Marxism)에 심취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동경했던 필자로서는 반백이 되어서야 현지의 실상을 접하게 되어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일찍이 남다른 통찰력으로 십 수 년 전부터 남북통일 문제에 접근한 세계가정평화연합 문선명 총재의 큰 안목에 감탄하면서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서 한 시간 남짓의 비행 끝에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어느 한적한 시골 공항 같은 공항에서의 통과의례는 예상과는 달리 간편하게 진행되었다. 마중 나온 금강산 관광 총회사 임직원들의 영접을 받으며 95명의 우리 일행은 3대의 버스에 분승했다. “그간 많은 외국인들을 맞이했지만 같은 동포인 남조선 인민들을 안내하기는 처음이라 가슴이 설렌다는 안내원 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역시 들뜬 기분으로 창밖의 풍경에 여념이 없었다.
50년 단절의 세월은 너무 깊은 골을 이루고 있었다. 한 조상에서 물려받은 같은 땅이건만 마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상한 나라에 불시착한 것처럼 생소했다. 넓디넓은 도로에 비해 가뭄에 콩 나듯 다니는 차량 너머로 많은 사람들은 걸어서 어딘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로변을 따라 고층 아파트는 즐비한데 상가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큰 건물 옥상은 김일성, 김정일에게 바쳐지는 찬양과 호전적인 구호 일색인 광경을 바라보며 체제 수호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을 찾는 외국인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쳐야 하는 곳이 만수대 김일성의 동상이라 했다. 특히 북한에서는 청춘남녀가 결혼을 할 때에도 특별한 예식 없이 총각이 오전에 신부 집으로 가서 점심을 대접받고는 신부를 데리고 김일성 동상 앞에 가서 결혼서약을 한 후에 신랑 집으로 함께 가서 조촐한 잔치를 한다고 했다.
운명 한지 10년이 다되었는데도 “주석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구호가 즐비할 정도로 북한 인민들에게는 이미 신격화되어 있는 동상 앞에 우리일행도 예외일 수 없이 의무 수순을 거쳐야 했다. 목적지도 안내하지 않은 채 3대의 버스가 멈추어 선 곳이 바로 동상 앞 이였다. 우리일행은 하나의 관광 코스로 생각하고 무심코 내렸지만 그들의 의도는 달리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보슬비가 약간 내리는 초저녁 무렵 동상주변은 강렬한 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았다. 맨 뒤쪽에서 취재 수첩을 들고 메모에 열중이던 필자는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께서 조그마한 조화를 들고 대표단 몇 명과 함께 단상 앞으로 나가 약간의 예를 갖추는 모습을 괴이쩍은 눈으로 뒤편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인사”라고 하면서 박사장과 대표단 서너명이 고개를 숙이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이 성직자들인 우리일행들은 옆 사람과 서로마주보고 쓴 웃음으로 대신했다. 특히 필자와 룸메이트인 박범주 강동교구장께서는 사전 안내도 없이 진행된 돌발적인 사태에 못 마땅한 표정이 역력하여 서로 의기가 투합 하는 걸 느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게 정칙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떠나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지 않는 변칙이 뜨겁게 동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자 박상권 사장께서 남북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관망 보다는 어떤 역할이라도 할 수 있어야 옳은 것 아니냐는 말씀으로 괴이쩍은 순간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북한 최초로 자동차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박 사장의 의지는 마치 만주벌의 독립운동가처럼 비장한 일면이 엿보이기도 했다.
 
■ 평양 야경 어둡고 생동감 없어 마치 영화촬영 세트장 같아.
우리 일행이 여장을 푼 보통강 호텔은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가에 위치해 있었고, 그 호텔 역시 박 사장이 운영하고 있었으며 호텔 바로 앞 8천여평의 대지는 통일그룹에서 통일센타건립 허락이 떨어져 택지 조성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운 빛깔의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안내원들의 살가운 서비스를 받으며 평양에서의 의미 깊은 첫 번째 저녁 식사를 했다. 금강산 관광 총 회사 사장의 열렬한 환영사와 통일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한 알의 밀알이 되자는 그곳 안내원 동무들과 호형호제하며 친숙해지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긴장과 흥분 때문인지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8층 숙소에서 내려다본 평양 시가지의 야경은 마치 영화촬영 세트장으로 꾸며진 죽은 도시 같았다. 고층 빌딩은 많은데 불빛 한 가닥 새어나오지 않는 광경을 보면서 생각보다 전력난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화국 초기에는 체계적 계획경제 정책으로 인하여 오히려 남한보다 국민소득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 특성상 급격한 변화의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어느 한계점에서 도태되어 버린 것이 분명했다.
평양의 아침 공기는 참 맑고 깨끗했다. 강물은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듯 했고, 일요일의 거리는 한적한 시골 읍내 같았다.
 
■ 시골 읍내 같은 평양의 아침.
제한된 일정에 보다 많은 곳을 둘러봐야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조반을 마치고 제일 먼저 간 곳이 그들이 최고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개선문이었다. 김일성께서 소련군의 도움으로 금의환향한 후 평양시민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 곳이라 했다. “돈 있는 자 돈으로, 지식 있는 자는 지식으로, 힘 있는 자는 힘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고 호소하여 군중들의 폭발적인 갈채를 받았다는 장소에 프랑스의 개선문을 능가하는 규모로 석조물을 축조하고 그 위용아래 음각해 놓은 글이 퍽 인상적이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역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국/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아~ 그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 하라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 하라/만고의 빨치산이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아 그 이름도 위대한 김일성 장군”. 이 뿐만 아니라 남북 7ㆍ4 공동성명과 지난 6ㆍ15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하여 3대 헌장 기념탑을 대규모로 세우는 등 한 나라의 지도자를 전설적 영웅으로 미화시키면서 전 인민을 결속시키려는 비용이 실로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었다. 만 가지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는 만경대 아래의 김일성 생가는 더더욱 점입가경이었다. 현재까지 1억9백 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단연 북한 최고 명소임이 분명했다. 김일성의 일대기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리얼하게 설명하는 그곳 안내원의 명연기에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만경대에 올랐다. 굽이돌아 서해로 달려가는 대동강 물줄기와 평양 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강은 말 그대로 명경지수였고, 화력발전소와 몇몇 공장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고 있었지만 공기는 아직도 오염치가 없는 듯 했다. 말로만 듣던 모란봉을 산책하고 을밀대를 돌아 내려오는 길에 여흥을 즐기는 일단의 노인들을 만났다. 몇 분의 할아버지들이 전통악기를 다루고 할머니들은 그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스스럼없이 노인들과 어울려 손에 손잡고 한참을 어울렸다.
 
■ 신명 많은 우리민족 동질성 실감.
각기 생각은 다를지라도 참으로 신명이 많은 동족임을 재삼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문선명 총재의 생가가 있는 정주 방문길에 올랐다. 단 한 번도 남측인사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지역이기 때문에 촬영금지는 물론 주변 농부들과의 접촉도 삼가 해 달라는 주의사항이 하달되었다. 안주까지는 포장도로였지만 나머지는 비포장 도로였다. 3시간의 여행길은 마치 60년대 내 고향 산천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간혹 구식 트랙터가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이 소달구지와 인력에 의거한 농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한곳에서는 도로를 개설하고 있었는데 장비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작업이 진행되는 풍경도 이채로웠다. 농지정리와 농업 기계화의 시작은 우리보다 앞선 게 분명했으나 동구공산권의 몰락과 소련과 중국의 변신으로 상호교류가 중단되고 우방의 원조가 끊어지면서 고립화가 가속화 되는 와중에 적절한 변신을 도모하지 못한 것이 자신들의 말처럼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원인으로 보였다.
벼논에는 예상치 않게 잡초도 많았다. 안내원에게 “왜 잡초 뽑기 전투는 안하느냐” 물었더니 솔직히 농부들이 의욕을 잃고 있다고 하였다. 토질도 나빠져 있고 비료와 농약도 제때 공급되지 않아 집단농장의 수확률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힘든 농사일을 품앗이로 달랬는데 그 품앗이를 구체화 시킨 것이 집단농장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공동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효율을 저하시키고 있는 게 확연해 보였다. 농가들도 오래전에 개량은 되었는데 리모델링이 되지 않아 마치 불난 집처럼 후줄근해 보였다.
 
■ 묘향산 박물관 20만 여점 전시.
다음날은 묘향산으로 향했다. 이름보다 더 맑다는 청천강 줄기를 따라 고속도로도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향산이라고 이름 했는데 김 일성과 김 정일이가 지난 50년간 각국 수반들과 요인들로부터 받은 각종 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대규모로 건설되어 있었다. 국제친선 박물관이라고 하는 그곳에는 김일성 선물 17만점, 김정일 5만점으로 국보급에서부터 보잘 것 없는 노리개까지 빠짐없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 반가운건 남한에서 보낸 물건들이었고 먼 훗날 귀중한 문화적 가치가 있으리라 여겨졌다.
관람도중 북한주민들과 인민군들을 자주 접했는데 인민군들의 키가 우리 중학교 일학년 정도밖에 안되어 보여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한참 먹성 좋은 나이에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부진일 거라고 여겨져 가슴이 아팠다. 박물관에서 한 마장 떨어진 곳에 그 유명한 묘향산 보현사가 있었다. 한때 서산대사가 거주했던 이 대사찰에는 팔만대장경 탁본이 보관되어 있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원래는 이곳 보현사에 있었는데 남북이 분단될 것을 미리 예견한 서산대사께서 진품을 남쪽으로 내려 보냈다는 설(說)이 있다. 그것이 허담이건 진담이건 보현사는 우리 불교사에 길이 남을 명찰로서 그 여세가 이어지고 있었으나 문화재 관리가 허술했고 넓은 도량에 비해 스님들은 몇분 계시지 않아 북한불교의 실상을 알려주는 듯 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유명한 교예극장의 공연을 관람했다. 무려 30여m를 날아가는 공중곡예는 신기에 가까워 인간 기예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놀라웠다.
공산주의 이론은 개인적인 성취동기의 소멸로 결국 대다수 인민을 도토리로 만들고 있었는데 비해 체제의 철학과는 또 다른 일면을 교예극장이 보여주고 있었다. 수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정상에 선 곡예사들의 묘기에 관객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엄존하는 바다나 정글이 수 억겁의 신비를 간직한 채 잘 보존되고 있는 것도 되먹임(feed back)의 순환 현상이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세상을 인위적으로 개조하려는 공산주의의 허욕이 낳은 궁핍.
인간세상을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개조하겠다는 공산주의의 허욕이 끝내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원점으로 돌아온 것도 근본적인 질서를 파괴한 원죄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공연관람을 마치고 기념품 전시장을 잠깐 방문했다. 아마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된 곳 같았는데 다른 외국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상품들은 국제시장에 내어놓아 경쟁이 될 만한 제품이 없어 보였다. 호텔이나 관광지보다는 훨씬 저렴했는데 똑같은 술 한병 값이 향산 전시장 17달러, 호텔 9.3달러, 이곳 수출품 전시장에는 7달러로 가격체계가 기복이 심해 어리둥절케 했다.
얼마 전 물가와 임금을 30배나 인상한 것이 개방을 위한 준비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악성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부분이었다. 방북 3일째는 북한 최초의 자동차공장인 평화자동차 견학이었다. 평양에서 남포까지는 10차선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건설되어 있었다.
저들의 말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93년부터 무려 42km나 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장비와 자재가 태부족인 상태에서 많은 청년들이 맨주먹으로 건설한 도로라고 하여 ‘청년영웅 고속도로’라 명명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무서운 집념과 끈기의 역사였고 자연과 인간의 싸움에서 승리한 의지의 시험장이라 자찬했다. 자갈과 모래가 모자라 망치로 바위를 바수어 망태기로 수 십리 길을 날랐는데 망태기가 찢어지면 깁고 또 깁기를 반복하면서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망태기 결딴나는 걸 더 안타까워했다하여 바로 그 망태기가 기념물로 보존되어 있다고도 한다. 인간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 모질고 끔찍한 현실이 그들을 배반한다 할지라도 그 고해바다 속에서 결코 타락할 수 없는 우리 영혼의 고귀함과 영원성을 함께 자각할 수 있다면 새로운 문명사를 잉태 시킬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해보기도 했다.
 
■ 통일염원 담은 평화자동차 공장.
평화자동차 공장은 100만평의 대지에 세워져 있었고 이미 생산은 되고 있었으나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 뚜렷한 경험도 없이 자동차 불모지에 뛰어든 박 사장의 통일에 대한 의지와 집념이 놀라웠다. 그는 또 북에서 무엇을 보고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각자가 조국통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취지의 당부를 거듭하곤 했다. 우리의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이 최초로 만들어낸 휘파람(소형차)과 뻐꾸기(밴)를 시승하면서 머잖은 장래에 이 자동차들이 휴전선을 넘나드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에 마음이 뿌듯해 왔다. 돌아오는 길에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옥류관에서 별미인 냉면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냉면 값이 7달러나 해서 좀 어리둥절했는데 북한 주민들에게는 싸게 파는 모양이었다. 다음 코스는 그들 최고의 자존심인 주체 사상 탑 이었다. 각기 낫과 망치 그리고 붓을 손에 든 세 사람의 동상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고 탑의 높이는 100m나 되어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모든 근본은 사람에게 중심한다는 그들의 사상철학은 막스의 유물론과 변증법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역사의 중심인 인민대중이 모든 사물의 주체이며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그 주체인 인민들의 투쟁에 의해 역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지였다.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진일보한 이론임은 물론 범아일여, 즉 우주와 내가 한 몸이라는 동양철학적 세계관에 근접하고 있었지만 영적인 세계와 생명의 영원성을 인정하지 않은, 즉 기존의 종교적 진리를 부정함으로써 자가당착적인 오류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주체이론처럼 사람 즉 생명의 가치가 소중하다면 혁명의 도구로서의 사람이 아닌 이 우주 속에 오직 하나뿐인 자기 자신의 영원성을 발견함으로써 비폭력 저항과 용서가 바로 영적인 완성은 물론 더 큰 혁명과업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모순이었다. 우리 인간은 광대한 우주공간에 비하면 티끌속의 티끌이지만 생명의 신비를 풀어가는 지혜를 지녔다는데서 진정 그 위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찰나에 불과한 생명 악업만 키워.
광겁의 역사 속에서는 몇 십 억년도 찰나에 불과한데 순간적인 욕망과 아집에 사로잡혀 우리 외부에 가득 차 있는 참 생명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수천만 인민들에게 악업의 씨앗만 키우게 된다면 그 영혼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 할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러나 절망하기보다는 더 큰 희망의 싹도 보였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서 대 변신만 가능하다면 우리 인류 궁극의 목표인 정신혁명의 진원지로서의 역할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되었다. 유사 이래 전무후무하게도 하나의 사상으로 단결된 집단에너지를 참 생명의 에너지로 변화시킨다면 온 나라를 하나의 큰 수도장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처럼 받들고 있는 김정일 장군 한 사람의 역할이면 가능하다는데 큰 매력이 있다고 보았다. 만약 그가 아버지의 주체사상에다 영원불변인 영적인 리더십을 가미시킨다면 우리민족의 장래는 물론 지금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갈등을 일거에 해소하여 새로운 문명사의 주역으로서의 부상도 가능하다는 확신도 되었다. 공산주의처럼 인위적인 평등이 아닌, 우주질서와 업보에 의해 부증불감(不增不感)하는 평등의 이치를 깨닫게만 된다면 화해와 용서로 더 큰 승리의 주역은 물론 지금의 가난도 불행이 아니라 청빈절제의 미덕으로 승화시켜 자신을 완성하고 해탈하는 방편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부족한 게 많다고 다급하여 선별 없이 천민자본주의만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면 사람과 자연을 무자비하게 황폐시키고 말 것이다. 그리된다면 50년 인고의 상처는 무엇으로 싸맬 것이며 대동강 명경지수와 푸른 하늘은 어디서 다시 찾을 것인가.
 
■ 통일의 그날 한민족 대웅비의 시대로 탈바꿈 할 것 기대.
비싼 값을 치른 만큼 더 큰 것을 얻어야 한다. 인류의 문명사는 반도를 중심으로 잉태되어 왔듯이 이제 한반도는 수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대웅비의 나래를 활짝 펼쳐야 한다. 그 중심에는 남과 북 사상과 이념을 뛰어 넘어 우리 모두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흥분이 되었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은 만감이 서렸다. 보다 많은걸 보고 느끼고자 했으나 행동의 제약과 빠듯한 일정에 아쉬움이 컸다. 저녁을 먹고 안내원 친구들과 술자리를 마련했다.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열띤 토론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국제적인 고립화로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여전히 혁명과업 하나에 무서운 집념을 잃지 않는 저들의 현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온 우주를 덮고 있는 신성의 빛인 영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민족통일은 물론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자유와 평화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대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염원해 보았다.
수많은 오류를 증명하는 것이 역사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을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야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공부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고 했다. 죽음 이후의 인생의 성적표와 역사의 심판은 지위고하와 빈부귀천을 떠나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김병관 전 서울시 재향군인회장/ 강동문인회장 / 토요저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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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초등학교 남57회,여48회 동창회
관리자 이택구, tg5457@naver.com